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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가의 삶, 스토링텔링화 공연
  • 권기상 기자
  • 등록 2015-08-04 10:05:56
  • 수정 2015-08-04 11: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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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70 주년 특별행사 개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제70주년 광복절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스토링텔링화 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고 8월 4일 밝혔다.

먼저 8월 8일(토) 안동시민회관 소공연장에서는 오후4시, 7시 30분 2회에 걸쳐 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와 안동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룬 '아 !! 석주 이상룡' 이 연극으로 제작· 공연 된다

'아 !! 석주 이상룡'은 지난 2010년 안동독립운동 스토리텔링 공모전의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단심가(원작 : 권오단 작가)를 원작으로 (사)한국연극협회 안동시지부에서 극화하여 제작된 것이다.

다음으로 경상북도가 지원하고 대구 로얄오페라단에서 제작한 민족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 로 일컬어 지는 안동지역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 여사의 삶을 오페라로 재 조명한 창작오페라 '김락'이 공연된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의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 행사는 광복절인 8월 15일에 공연돼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평가이다.

오페라 공연은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에서 15일 오후 1시30분과 5시30분 2회에 걸쳐 열리며 8월 29일에도 같은 시간에 서울 KBS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8월 29일(1910년8월29일, 경술국치일-토) 오후 2시에는 독립군가부르기 도내합창경연대회가 안동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개최된다. 

도내 순수 아마추어합창단으로 구성된 팀들이 경연을 갖게 될 이번 행사는 당초 메르스의 여파로 참여팀이 다소 저조하지만 안동을 비롯한 경산, 영주, 예천, 봉화, 청송 등 참여 팀의 열의는 어느 대회 못지않다고 전해졌다.

특히 독립군가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거나 불러볼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담아 대회에 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행사가 개최되는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로 나라 잃은 치욕의 그날을 역사적 의미로 새겨 볼 수 있는 날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희곤 관장은 "다양한 광복 70주년의 특별행사를 통해 도민들과 특히 한국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의 지역민· 자라나는 청소년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나라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행사 및 티켓 구입 문의는 기획관리부 823-1520 , 1555으로 연락하면 된다.



* 석주 이상룡 (1858-1932 石洲 李相龍)
  
석주 선생은 나라의 운명이 기울 때 의병기지를 만들었고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세워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또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선생은 풍족하고도 편안한 삶을 버리고 멀고도 험한 독립운동의 길을 떠났다. 

만주에서 경학사·한족회·서로군정서 등을 세워 독립운동을 펼찬 선생은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에 취임하여 민족의 최고지도자로 활약했다. 일생을 오로지 나라 찾는 데 몸 바치다가 1932년 길림성 서란현에서 순국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올바른 지를 살피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치는 참다운 선비의 길, 바로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신 선생의 삶이야말로, 겨레와 인류의 양심을 지켜낸 표상이 아닐 수 없다.                                      
* 김락 (1863-1929 金洛)

본관은 의성이다. 아버지는 경상도 도사를 지낸 김진린이며, 만주 독립군 기지 개척의 지도자였던 김대락이 큰오빠이다. 김락은 1862년 임하면 천전리에서 4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김락은 1880년 만18세의 나이로 안동시 도산면 하계마을에 자리 잡은 진성 이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당시 양산 군수를 역임하던 향산 이만도의 맏아들 이중업이었다. 1896년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전개되자, 시아버지인 이만도는 예안 의진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10년에는 24일 동안 단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 이중업은 1919년 제1차 유림단 의거(파리정서) 등을 이끌다가 1921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이동흠, 이종흠과 사위인 김용환 (학봉종손)· 유동저도 조국 광복을 위해 끊임없이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김락 자신도 57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1919년 안동 예안면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고문으로 인해 두눈을 실명했다.

김락이 참가한 예안면 시위는 안동지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최초로 만세 시위를 일으킨 것으로 2차에 걸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실명한 이후 남편 이중업 마저 세상을 떠났으며, 두 아들과 사위들의 항일투쟁을 오직 귀로 밖에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두 아들이 제2차 유림단 의거로 체포되었다가 풀려 나온지 2년 뒤인 1929년 2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 독립군가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에 의해 불리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1910년에서 1920년 전후에는 가장 많은 수의 독립군가가 나타났다. 노랫말은 독립과 광복 쟁취를 위한 항일 투쟁정신과 애국심 고취, 그리고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을 주요내용으로 했다.  

잘 알려진 <용진가>와 <독립군가>가 나오고, <신흥무관학교 교가>등의 노래가 불리었다.  3·1독립운동 무렵에는 임시정부가 지정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항일전선가>·<우국지사의 노래>·<독립지사의 노래>등  15곡 정도의 독립군가가 국내와 망명지에서 불려졌다.

1936년 이후 대부분의 독립군이 해산되고 광복군이 이를 대신하게 되자, 독립군가의 대부분이 광복군가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광복까지는 <광복군 행진곡>·<광복군 항일공작대가>·<광복군 항일전투가>·<광야를 달리는 독립군>·<압록강 행진곡> 등 15곡 정도의 독립군가가 있었다.

최초의 독립군가가 나온 이후 해가 거듭될수록 곡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났으며, 곡의 선율은 새로 작곡된 것들과 기존의 전통민요와 중국 곡, 러시아 군가, 간단한 서양식 행진곡과 찬송가 또는 창가에서 차용하여 온 것들로 나눌 수 있다.

 (글 : 김희곤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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