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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사와초(仁陽寺瓦草)’ 명문와(銘文瓦) 발견
  • 경남편집국
  • 등록 2015-02-27 14: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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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편)
서부경남에서 손꼽는 중요 절터로 알려져 있는 추정 인양사터 주변 발굴조사과정에서 인양사와초(仁陽寺瓦草)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명문와(銘文瓦)들은 가로 25cm, 세로 31cm, 두께 2cm, 글자는 세로로 타날(打捺)되어 있으며, 지난 2008창녕 도시계획도로개설 구간 중 인양사터 동편 통과 구간 내 유적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발굴조사를 마무리 하던 중 인양사와초(仁陽寺瓦草)’ 라는 명문와(銘文瓦)가 발견되었다. 이 중 와초(瓦草)는 기와를 뜻한다. 이러한 명문와(銘文瓦)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경주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황룡사(皇龍寺)’ 와 보문사터에서 출토된 보문사(普門寺)’ 등이 있다. 이처럼 옛 절터에서 출토되는 명문와들은 바로 그 자리에 사찰이 있었음과 동시에 절이름(寺名)을 알려주기 때문에 해당 사찰의 존재 자체와 유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인양사 주변 발굴조사과정에서 나온 인양사와초(仁陽寺瓦草)’ 명문와(銘文瓦)는 주로 3호수혈 동쪽 중앙부분에서 이제까지 4점이 출토됐다. 이 명문와(銘文瓦)들은 창녕지역에서 가장 큰 절터로 추정되는 인양사의 실체를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현지에 남아있는 인양사 조성비(보물 제227)가 후대에 다른곳으로부터 옮겨진 문화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아울러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명문와의 발견으로 인양사터의 위치는 확고부동하게 되었다.

 

한편 인양사 조성비는 통일신라 혜공왕 7(771)부터 헌덕왕 2(810)에 이르는 40년 동안 인양사 탑과 금당 등을 건립 보수한 사실을 기록한 치성문(治成文)이 새겨져 있는데, 북면의 승상(僧像)에 새겨진 비석은 국내에 이것이 유일하다.

 

문화재청의 소규모발굴지원사업으로 실시되었던 창녕 교리 306-1번지에는

현재 개인주택신축을 위한 사전절차로 발굴조사가 완료됐다.

 

이 대지는 현재 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조영된 인양사지의 경내에 포함되어 있고, 주변일대에서는 2008창녕 도시계획도로개설 구간 내 유적이 조사된 적 있다. 이번 조사는 2014. 12. 2 ~ 2015. 1. 29까지로 창원소재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맡아서 진행했다.

 

한편 소규모발굴지원사업이란 개발로 매장문화재를 파괴하거나 보존 및 활용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경우, 최소한의 기록보존을 위해 발굴조사비용은 원인자(사업시행자) 부담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고자 해당하는 건축 및 개발(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13항 및 시행령 제10)에 대해서는 국가가 복권기금을 활용하여 발굴조사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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