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동부경찰서 112타격대 일경 임대진 인간사회 현상을 단순히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만 바라본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좋은 실적이라는 작용이 있었기에 승진이라는 반작용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타인에게 거짓말이라는 작용을 준다면 불신이라는 반작용으로 돌아올 것이다. 인간사회 현상은 자연법칙과는 다르게 늘 동일한 설명이 통용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은 뽑아 낼 수 있다. 승리라는 반작용이 나타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작용은 무엇일까? 승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나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필수조건은 타인의 패배이다. 승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패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가해자의 존재이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학교폭력의 경우도 이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있어야만 피해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따, 금품갈취, 셔틀 같은 대부분의 학교폭력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다수의 무리에 의해 소수의 약자가 괴롭힘을 당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학적인 확률로만 보았을 때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보다는 가해자가 될 확률이 더 높음을 내포한다. 많은 부모들이 행여나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노심초사하지만, 통계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해자가 될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교육부에서 제공한 2013년 1차 학교폭력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학교폭력은 2012년에 비해 63% 감소하였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학교폭력이 눈에 띄게 감소하였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유형은 더 조직화되고 치밀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집단 따돌림의 경우 작년에 비해 그 비중은 5.2% 증가하였고, 폭행·감금, 사이버 괴롭힘은 각각 2.1%, 1.8%로 그 비중이 증가하였다. 이를 두고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눈에 보이는 폭력을 줄이는 데 효과를 거뒀지만, 학교폭력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본도 최근 발견하기 어렵게 따돌리는 새로운 유형으로 학교폭력이 음습화(陰濕化)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학교폭력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성교육의 제도화가 꾸준히 제시되고 있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자고로 인성교육이란 가정에서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제도화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가정 내에서의 올바르고 끈질긴 인성교육이다.
물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 내에서의 인성교육은 필수적이지만 자기 자녀의 인성교육을 학교에 맡기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 행동이다. 학교는 학원처럼 성적만을 올리기 위한 기관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성교육만을 위한 기관도 아니다. 인성교육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면 국영수보다 도덕이나 철학 위주로 수업을 해야 하며 한 학급도 10명 이하의 아이들로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학교의 환경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부모 말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을 40명이나 관리하는데 어떻게 올바른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 인성교육제도를 위한 점진적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 동안에도 우리 아이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고 있다. 학교나 다른 사회 기관에 자녀의 인성교육을 맡기는 부모의 수동적인 태도로는 절대로 학교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부모가 되었다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내 자녀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녀 인성교육을 꾸준히 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 가해자가 없으면 피해자도 없듯이, 우리가 우리 자식을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키우지 않으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일도 없다. 학교폭력이 증가한다는 것은 피해자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지만, 이에 상응하여 가해자의 수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가해자로 키웠기 때문에 학교폭력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키우지는 않았겠지만, 매스 미디어가 범람한 현대 사회에서는 한순간의 무관심과 방치가 내 아이를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만들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현대 사회. 정보의 범람으로 단 1초도 빠짐없이 현대 사회의 인간은 정보를 받고 공유하며 생활하고 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 문화를 접하는 요즘 아이들은 하루라도 인터넷 없이 살 수 없을 만큼 인터넷 의존도가 높다. 과거와는 다르게, 아이들의 자아와 인성이 인터넷 속에서도 형성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인터넷 속 사이버 공간이 무법지대나 마찬가지며 유해매체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정치든, 스포츠든, 연예기사든, 접속에 연령제한이 전혀 없는 인터넷 뉴스이지만, 밑에 달리는 댓글은 욕설과 비방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개인 포털 사이트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하다. 남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인터넷 게임 속은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 사기를 치는 사람, 게임을 못한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행여 제재를 받더라도 본인만 그 사실을 알 뿐 타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제재도 매우 미약하다. 이는 행동의 옳고 그름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고도 처벌 혹은 제재를 받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그 행동이 용납이 되는 것이라 받아들이게 되고 그 행동을 별 망설임 없이 행하게 된다. 또한 인터넷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모임을 형성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저하되어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버리기 쉽다는 점도 자아가 형성 중인 아이들에게는 위험하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 늘 노출되는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밀착되고 세밀한 인성교육을 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가정 내에서의 인성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정보화 시대의 부모는 내 아이가 현실 세계는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어떤 ‘자아’가 형성되어 있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지에 관심을 가지고 옳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억압된 통제는 절대 안 되지만 방임 또한 절대로 안 된다. 자녀와 최대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내 아이가 접하는 정보에 늘 주의를 기울이고 유해매체 등급을 지키며, 언제나 유익한 매체에 노출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먹고 살기 바빠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내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오늘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지 자녀와 공유하고 자녀의 옳은 자아 형성에 힘써야 한다. 그럴 환경이 열악하다고 인성교육을 포기하거나 방관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의 사춘기 때문에, 먹고 살기 바빠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미 되돌릴 수 없어서 라는 이유로 내 아이를 방치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처벌을 받고 평생 낙인이 찍혀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성품은 흐르는 물과도 같다. 흐르는 물은 진흙탕을 지나게 되면 진흙탕이 되고, 맑은 계곡을 지나면 정화되어 깨끗한 물이 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맑은 계곡이 점점 사라지고 진흙탕은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내면을 가꾸어 주는 콘텐츠에 비해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콘텐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범람하는 유해매체 속에서 완벽하게 내 아이를 지켜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아이가 다시 깨끗해질 수 있도록 부모가 맑은 계곡이 되어주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