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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그 새로운 힘 코리언스피릿
  • 권기웅 기자
  • 등록 2012-02-27 09: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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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화 3.1절의 안동, 한민족의 무궁한 미래를 열자.
 
올해 임진년은 66%의 경작지가 파괴되고 민간인 포함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임진왜란' 이 60주년씩 7번 지나간 임진년이다. 420년 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의 한숨과 눈물, 피로써 구출한 나라를 결국 1910년 8월 29일 국치(國恥)를 당해 잃고 만다.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대한제국을 선포한 근세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께서 1919년 1월 21일 갑자기 돌아가신다. 그 얼마 전, 돌연 고종의 어의御醫가 바뀌고, 그날 밤 궁의 숙직책임자가 이완용이었고, 건강했던 고종께서 급사하시니 당연히 독살의 의혹이 일 수 밖에. 더구나 고종은 이미 독살을 당 할 뻔한 경험이 있기에 평소에도 조금씩 독을 섭취하여 독에 대한 내성이 있었던 터이다.

그날 밤, 고종에게 식혜를 올린 침방 나인 김춘형과 덕수궁 나인 박완기, 두 명의 궁녀들이 1월 23일과 2월 2일 차례로 죽어가니 입막음을 위한 연쇄살인이라는 말이 확산된다. 기미년 삼일 만세운동은 학생,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권번의 기생들, 심지어는 거지들까지 들고 일어났으니 갓난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참여한 셈이다. 나라의 인구 중 약 444명중 한 명이 구속되고, 1,333명중 한 명이 부상을 입고, 2,600명중 한 명꼴로 죽임을 당했다.

경상북도의 기미년 만세운동은 20개 군의 동참으로 3월 8일에 시작되어 4월 28일까지 50여 일 간 계속되었다. 산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는 소극적인 운동보다 직접 시위운동을 택한 것은 경상도의 화끈한 기질의 반증이고 규모와 그 내용으로는 13개소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안동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안동의 예안면에서는 3월 17일 장날을 기해 1천5백여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니 14명이 피살되고, 1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그중에 영원히 기억해야 할 분이 계시니 바로 김락(金洛 1862 ~1929)님이시다. 김락은 한 가문의 맏며느리, 부인, 어머니로 생명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 한 '대한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분의 친정은 안동 내앞(川前)의 '사람 천 석, 글 천 석, 밥 천 석'으로 유명했던 의성 김씨 삼천 석 댁이었다.

부유하고 다복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의 아들 이중업과 결혼을 하니 나라의 운명과 함께 고난이 시작된다. 향산 이만도는 퇴계의 11대 후손으로 3대에 걸친 급제와 벼슬로 영광의 주인공이었으나 나라가 위급해지자 1896년에 봉기한 예안(禮安) 의병대 대장으로 투쟁을 하고 결국 단식으로 순국을 감행하니 향년 69세였다. 김락의 남편인 이중업(李中業)은 을미의병 때 이미 아버지를 따라 의병에 참여했고, 1917년에는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을 집에 은신시킬 정도로 광복회 활동에 깊숙이 참여하였다. 김락의 아들 형제 이동흠(李棟欽)과 이종흠(李棕欽)은 각 문중을 순회하며 군자금을 모아 1926년 나석주(羅錫疇) 열사의 의거에 자금으로 쓰여 지는 등, 상해의 김구선생의 의열 단원 활동에 도움을 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동흠, 종흠 형제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다.

김락의 맏사위로 학봉 김성일 집안의 종손이자 파락호로 소문났던 김용환은 은밀하게 독립운동 자금을 댄 유공자이고, 둘째 사위 유동저 역시 독립운동가이다. 손주 며느리와 뱃속의 손주 딸을 데리고 살인적인 엄동설한에 만주로 간 백하 김대락(白下 金大洛) 이 바로 감락의 친정 큰 오빠이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임청각의 석주 이상용(石洲 李相龍)은 김락의 큰 형부이다.

석주의 가계(家系)는 고려 말의 행촌 이암, 이맥, 이기, 이유립, 계연수 등으로 나라에서도 엄금한 민족의 역사와 천부경과 홍익철학을 가학(家學)으로 대를 이어온 국학의 집안이다.
김락은 며느리로, 아내로, 동생으로, 처제로, 어머니로, 장모로, 본인 또한 58세의 노구로 1919년 예안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결국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평생 두 눈을 잃게 된다.

김락을 중심으로 시가, 친가의 훈장, 표창을 받은 애국자가 26명이 배출되고 본인 또한 여성으로 유일하게 독립지사의 반열에 오른다. 온 나라에서 울려 퍼지는 '대한독립만세' 함성은 만주, 연해주, 미국, 일본으로 이어졌고, 한민족 발 독립선언은 외국으로도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간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의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신석우(申錫雨) 선생의 제안에 의하여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탄생된다. 4월 13일에는 드디어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니 삼일만세운동의 결정체이다. 나아가 중국의 손문에 의한 5.4 운동, 인도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의 재 점화, 베트남, 필리핀, 터키, 이집트의 독립운동으로 각 민족과 나라의 자존의 간절한 소원이 전 지구로 해일처럼 번져간다. 당시 세계 인구의 3/4이 식민지 지배 하의 비참한 노예로 전락됨에 인류의 존엄 회복을 위한 광복의 밝고 강렬한 한류의 태극기의 물결이 바로 기미년 삼일 만세운동이었다.

기미년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맺고 있다.
"... 또한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우리에게 먼 조상의 신령이란 두 말 할 나위 없이 국조 단군들이시며, 상생과 조화의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지구촌 철학이다.

안동 국학원에서는 바로 대한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김락 연극을 안동과 전국적인 교육 무대에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안동 국학원 회원들은 스스로 대본을 쓰고, 스스로 연극배우로 서면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안동의 정신을 알리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자주적인 애국자들이다.

민족혼의 정수인 한민족의 삼일 만세운동은 인류의 모든 불합리한 것들을 극복하는 인간주권 광복의 기준이자 원동력의 세계역사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상의 단 하나의 기적은 코리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꿈에 취한 듯이 다시 극심하게 갈등하고 있다. 남과 북, 영남과 호남, 사용자와 노동자, 진보와 보수, 여와 야로 밤낮을 다툼으로써 다시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베 노부유키의 망령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급하게 돌아보고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암울했던 과거를 잊은 자들에게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태극기 앞에서 맹렬하게 자성해야 할 임진년의 3월1일이다.
 
<글, 원암 장영주(蔣永柱 65)>
現 (사)국학원 원장(대)
現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원장
現 한민족정신지도자연합회 대표회장
現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前 세계 100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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