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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안동선비 이중언'
  • 조현규 기자
  • 등록 2010-08-13 08: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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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중언(李中彦)', 특별기획전 열려...
 
'201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안동선비 이중언' 특별기획전이 8월 12일 오전 11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개막했다.

이날 권영세 안동시장, 김광림 국회의원을 비롯해 류영하 안동독립기념 사업회 이사장, 이주헌 광복회 안동지회장, 김백현 안동시의장, 김명호.이영식 도의원 및 이중언 선생 증손자인 이동일씨,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중언(1850~1910)은 1850년 2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퇴계 이황의 12대 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글과 도덕을 존중하고, 의리와 범절을 세워 살아가는 선비마을에서 성장했다. 1879년 5월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사간원 정언을 거쳐 1880년 사헌부 지평에 제수됐으나 곧 그만뒀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중언은 무너져 내리는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1881년에는 영남만인소에 앞장서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고, 1895년에는 의병을 일으켜 싸웠다. 선성의진(예안의진)의 전방장을 맡아 활약하며, 함창의 태봉전투를 이끌었던 것이다. 1905년 ‘박제순-하야시 강제합의(을사늑약)’로 외교권을 빼앗기자 ‘을사5적을 목 베라’는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다. 목 놓아 통곡하던 만 60의 이중언은 “을사년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후 오로지 한 올의 명주실과 다를 바가 없이 목숨을 영위해온 사람이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내가 어찌 감히 살아있는 인간으로 자처하겠는가.”라고 탄식했다. 마지막 길을 가늠하던 이중언은 결국 단식을 결심했다. 족숙 향산 이만도의 단식 소식은 그의 마지막 결단을 굳혔다. 1910년 10월 10일(양력) 향산 이만도가 순국하던 바로 그날 이중언은 단식을 시작했다.

그 다음날, 이중언은 「경고문(警告文)」을 지어 나라가 무너진 마당에 오직 나아갈 길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던져 의로움을 택하는 것뿐이라는 뜻을 선언했다. 내 한 목숨 던져 자존을 세울 터이니, 동포들이여 나라가 무너졌다고 쉽게 꺾이지 말고 뜻을 세우고 맞서 싸우라는 강한 뜻도 담았다. 이중언은 단식을 시작한지 27일 만인 11월 5일 순국했다.

나라가 무너져 가던 때에, 안동의 민족지성이 선택한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전통을 계승하면서 나라를 붙들어 세워보려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혁신적인 변화 속에 새로운 틀을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이중언은 바로 전자의 길을 걷다가, 나라와 함께 산화해 간 안동선비였다. 그는 무엇이 옳은 길인지, 그것만 묻고 답하며, 그 길을 갔다.

‘바른 길’ 보다는 온갖 이기주의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제대로 된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는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이번 기획전을 마련한 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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