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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서원철폐령의 실체 최초 확인
  • 경남편집국
  • 등록 2009-07-21 13: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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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 사액 관산서원(冠山書院) 사당터 조사현장 공개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는 경남 창녕군(군수 김충식)에서 의뢰한 창녕 유일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인 관산서원(冠山書院, 현 관산서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의 사당터에 대한 긴급 학술조사를 통해 대원군 서원 철폐령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햇으며, 그 현장을 7월 21일 오전 11시에 공개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대원군은 서원철폐령(1868ㆍ1871년)을 내려 전국의 미사액ㆍ사액서원(약 1700여곳)을 47개소(사액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원매주(撤院埋主) 하라[’서원을 철폐하고 사당에 모신 위패(位牌)인 신주(神主)를 묻어라(撤院埋主之節……大院君分付擧行事)‘] 명했다. 이번 사액(1711년, 숙종37) 관산서원 사당터 조사에서 온전히 확인된 매납시설을 통해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더구나 관산서원은 창녕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자 영남5현(嶺南五賢, 김굉필ㆍ 정여창ㆍ이언적ㆍ이황ㆍ정구)의 한 분으로 숭앙(崇仰)된 영의정(추증) 문목공 (文穆公) 정구(鄭逑, 1543~1620년)를 기려 그가 사망하자 세운(1620년, 광해군12) 서원으로, 정구가 임지로 첫 부임한 창녕현감(1580~1581년)시절 관산재(冠山齋)를 비롯한 8개의 서당인 8서재(八書齋)를 세우는 등의 선정으로 생사당(生祠堂)이 서고, 사망 당해에 바로 관산재 아래에 세워진 서원이어서 더욱 그 의의가 높은 곳이다.
 
이러한 서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발견된 매주(埋主)시설은, 철폐시킨 사당터 자리 한가운데를 파고 옹관처럼 옹기를 맞붙여 세워 그 속에 신주, 곧 정구의 위패를 봉안하고는 그 둘레에 사당에 얹은 기와로 3겹이나 감싸고 단단하게 흙으로 덮은 특이한 형식이다.

겹겹이 둘러싼 기와 사이에는 습기제거나 벽사용으로 보이는 숯덩이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옹기 속에는 옻칠이 된 목제 위패 1점이 모셔져 있음이 비디오 내시경(Video-scope)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지금까지 서원철폐와 관련된 실증적인 유물자료는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창녕 관산서원 터에서 발견된 매주시설과 형식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첫 사례로서 그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덧붙이는 글

※ 관산서원은 1871(고종 8)의 사액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899(광무 3) 지역의 18개 유력문중들이 옛 서원터에 관산서당(冠山書堂)을 세워 오늘날까지 보존, 관리하고 있다. ※ 정구는 영남학파의 두 거봉인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의 제자이자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의 스승이며,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을 잇는 기호남인 실학파의 학적연원을 이루는 비조(鼻祖)로서 이황 다음으로 많은 서원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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