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의경 숙명여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약품 분야는 협상 초기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주요 사회정책의 하나인 건강보험제도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국내 반발이 드셌고 향후 5~7년간 10~12조의 건강보험재정이 소요되고 감기약 한 봉지값이 10만원으로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욱이 협상 초기에 발표한 우리나라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하여 미국측이 강력히 반발하고 협상 중단까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국과 미국의 제약산업 규모 차이를 감안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기도 한 이번 의약품 협상은 사실상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처할 수 밖에 없었던 부문 중에 하나였다고 본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 근간 유지 성과
그런데 협상 타결 결과를 살펴보면 신약의 최저가격 보장, 물가인상에 연동한 약값 인상, 의약품에 대한 비용 대비 효과 등의 경제성 평가 도입 연기 등의 주요 쟁점에 대해 미측 요구를 철회하고 한국측 입장을 관철했으며 특허의약품의 적절한 가치 인정이나 독립적 이의신청 절차 마련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의약품 분야 협상 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근간이 유지됐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보건의료서비스를 국가나 사회가 제도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서 사회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환자 진료에 필수불가결한 양질의 의약품을 적정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통한 보험의약품의 합리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설득과 일관된 입장을 통해, 건강보험 정책을 우리나라의 주권 사항으로 존중받고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훼손하지 않은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물론 협상결과에 따른 우려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특허권의 연장 등으로 오리지날 제품의 품목 독점력이 현재보다 강화되고 상대적으로 제네릭 의약품의 시장 출시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재정 부담이 일부 증가하고 제네릭 중심의 국내 제약산업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예상피해 크지 않아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파급 영향 수준이 당초 협상을 시작했을 때의 우려나 시민단체의 우려에 비해서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틀 안에서 선별 등재와 약가 협상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며, 독립적 이의신청절차는 수용하되 해당 기구에서는 원심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신약 가격의 인상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품의 지식재산권 부문에서도 국내 제약업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 현행 국내제도 수준에서 합의를 도출한 노력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의 허가 및 특허 연계 등으로 오리지날 제품의 품목 독점력은 강화되는 반면, 국내 제약기업의 제네릭 등 신제품 개발에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물론 협상 결과 지재권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당초보다 상당부분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나, 특허 연계에 따른 허가 정지 기간 등 후속 조치에 따라 피해규모가 상당부분 좌우되느니 만큼 향후 구체적인 적용방안 마련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재권 보호 강화, 신약 개발 동기 부여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지재권 보호 이슈는 특허의약품의 적절한 가치 인정을 통해 오히려 기업의 연구개발 의욕을 고취시키는 등 신약 개발에 대한 긍정적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제약업계들이 과거 복제의약품 위주의 영업 중심적 모델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R&D 역량을 확충하고 혁신에 기반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국내 시장에만 머물지 말고, 국내 제약기업의 개량신약과 제네릭의약품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제약산업의 근본적 체질을 개선하고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적극 활용됐으면 한다.
이러한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우리측이 요구한 의약품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및 복제의약품의 상호인정(MRA) 추진이 합의된 것은 제약업계의 장기적인 경쟁력 제고에 상당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FTA는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이다. FTA의 잠재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제약기업의 자체적인 노력은 물론 정부의 다각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FTA의 연착륙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공동 노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