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훌륭한 檀君朝鮮史(단군조선사) 중에서 檀奇古史(단기고사)에서 對馬島(대마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檀奇古史(단기고사) 第6世 馬密(마밀) 奇子(기자) 때에 즉 BC 1090년 때에 馬密(마밀)奇子(기자)의 아우 馬立罕(마립한)을 對馬島(대마도)의 왕으로 삼았다 라고 단기고사의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 이 檀奇古史(단기고사)는 大震國(대진국) 즉 渤海(발해)의 건국 시조인 大祚榮(대조영=高王)의 아우 盤安郡王(반안군왕) 大野勃(대야발)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四海(사해)에 널려 있는 史書(사서)를 수집하고 石室(석실)에 있는 藏書(장서)와 옛 碑文(비문)과 역사적 평론을 참고하다가 돌궐국(터어키)에 까지 두 번 들어가 古蹟(고적)을 탐사하여 의심되는 것은 빼고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여 13년이 걸려 729년 天統(천통) 31년에 완성한 檀君朝鮮史(단군조선사)이다. 檀奇古史(단기고사) 서문 첫머리에서 저자 大野勃(대야발)은 당나라 장군 蘇定方(소정방)과 薛仁貴(설인귀)가 백제와 고구려 멸망당시 그 國書庫(국서고)를 부수고 단기고사와 고구려 백제사를 전부 불태워버린 관계로 다시 고대사를 편집하고자 여러 의견과 많은 사기를 참고하여 그 윤곽을 잡았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그 서문에는 대야발이 발해국 고왕의 명을 받들어 천통 17년 3월 3일에 삼일신고 序(서)를 적게 된 경위가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삼일신고의 보배로운 참 이치가 있으며 심오하고 현묘한 신령스러운 글들이 있으며 특히 제1세 단군왕검(BC2333년)으로부터 제47대 古列加(고열가) 단군(병인 원년 BC295년)까지 약2천 여년의 역사를 역대 임금의 재위 기간과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기술하고 있다. 즉 桓儉(한검)은 桓雄(한웅)의 아들이며 桓因(한인=桓仁)의 손자인 檀君王儉(단군왕검)이 三一神誥(삼일신고)를 천하에 널리 알리고 366사의 神政(신정)으로 정성스럽게 훈교하여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이 10월 3일에 桓儉(한검)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그가 제1세 檀帝(단제) 즉 檀君(단군) 이라고 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름만 전해 오던 것을 구한말의 한학자인 柳應斗(유응두)가 中國(중국)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檀奇古史(단기고사) 第6世 馬密(마밀) 奇子(기자) BC 1090년 때에 對馬島(대마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역사의 사실을 말하였다. * 첫 해에 맏아들 牟弗(모불)을 세자로 삼고 高先子(고선자)를 首相(수상)으로 삼고 路日突(노일돌)을 上將(상장)으로 삼았다. * 2년 7월에 日蝕(일식)이 있었다. ◐ 3년(BC 1090년)에 아우 馬立罕(마립한)을 對馬島(대마도)의 왕으로 삼았다. * 8년에 後檀朝(후단조) 사절이 오니 사신을 보내어 사례하였다. * 10년에 上將(상장) 路日突(노일돌)을 보내어 幽洲(유주) 營州(영주)를 얻고 셋째 아우 馬石干(마석간)을 諸侯(제후)로 삼았다. * 12년에 政法通編(정법통편)과 國民讀本(국민독본)을 편찬하였다. * 18년에 임금께서 승하시고 세자 牟弗(모불)이 왕위에 오르니 제7세 奇子(기자)시다 [모불(牟弗)의 재임 시기는 BC 1074년] [檀奇古史] (終) 桓紀 9205년 檀紀 4341년 戊子年 西紀 2008년. ![]() <안동시청 종합민원실 '황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