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시장 김영석)에서는 선현들의 고귀한 발자취를 찾아 후세에 알림은 물론이고 선현들의 인연을 계속이어 선현의 기를 지역발전에 근간으로 삼고자 영천이 낳은 선현으로 고려말 충신이며 성리학의 대가이신 포은 정몽주선생의 유적을 찾아 경기도 용인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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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에서는 선현들의 인연으로 선현들의 흔적이 있는 도시와 선현과 관련한 교류는 물론 지역홍보, 농특산물 홍보, 문화교류등 다양하고 활기차게 교류를 추진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등 침체된 지역 분위기를 쇄신하는등 선현들의 인연을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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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들의 흔적을 찾을수 있는 도시로는 정몽주 선생은 산소가 모셔진 경기도 용인시이며 최무선장군이 대활약한 진포대첩지인 전북 군산시를 비롯하여 노계 박인로 선생님은 부산시 수영구와 경남 거제시등이 있으며 부산 수영구에서 노계선생의 유적을 찾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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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 용인시에서 포은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곳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선생의 묘소이다.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개성 선죽교 에서 타살된 뒤 태종6년(1406)3월, 풍덕군에 뫼셨던 묘소를 지금의 자리에 옮겨 부인 경주이씨와 합장하였다. 묘소는 단분으로 상석, 혼유석,망주석,문인석 등이 종전부터 있었으며 곡담과 둘레돌 등은 1970년에 추가 설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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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는 묘역의 민가 3채를 이전하고 신도비각,재실 등 대대적으로 정화 사업을 실시 하였다.
묘역에는 묘표와 신도비가 있다. 묘표는 1517년(중종12)에 태학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중종에게 청원하여 세운 것으로 조선 시대에 세웠는데 앞면에 “고려수문하시중정몽주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지금의 산소는 선생이 순절한뒤 경기도 풍덕군에 묘를 섰다가 후에 고향 경상북도 영천으로 천묘했는데 면례행렬이 지금의 용인시 수지읍 경계에 이르렀을때 앞에 세웠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려 현재 위치에 떨어져 이곳에 안치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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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아래 묘소 수호를 위해 영모재가 있다. 처음에는 포은영당이 있었다고 한다. 영모재의 현액은 송시열이 썻다고 한다. 그 외 묘역에 이르는 마을 좌측에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가 있다.
묘역이 있는 용인에서는 2003년 문화관광부의 “6월의 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80만 용인시민의 얼이자 정신적인 지주이신 포은선생을 매년 선생의 기일(음4.4)전후에 일정을 잡아 포은문화재가 용인문화원과 포은문화제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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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문화제는 1박2일에 걸처 산신,고유제를 시작으로 상여놀이대회,청소년국악경연대회,포은연극제와 포은선생천장행렬,전국한시백일장 대회, 청소년백일장대회,포은선생추모제례,기념식(충,효,예 포은상 시상),상산제,시상및공연행사.폐회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2007년 제5회 포은문화제에는 추모제례시는 인간문화재56호이신 이형렬님의 집레로 초헌관을 김문수 경기도지사, 아헌관을 이종민 용인 문화원장, 정래정 영일정씨 포은공파 대종손이 종헌관으로 제례를 모신바 있으며 대내귀빈의 초청으로 전국적인 전통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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