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동보육시설에서 근무한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표현으로는 고아원, 보육원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많던 전쟁고아와는 달리 요즘 아동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계시지만 온전하지 않은 가정에서 학대나 방임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시설로 오게 된다.
복무를 시작하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동보육시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나에게 아동보육시설은 단지 드라마나 만화에서만 접하는 게 전부였다. 매체에서 나오는 아동보육시설에 대한 이미지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불량하거나 하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앞으로의 복무생활이 천근만근 부담으로 밀려왔다.
하지만 복무를 시작하고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채 선입견을 만들어버린 나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실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부정적인 아이들이 아니었고 만화에 나오는 불량스러운 캐릭터의 아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아이들은 나에게 세상의 소중한 의미들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한 고등학생 아이가 있었다. 이 친구는 나와 자기가 좋아하던 선생님이랑 닮았다며 처음부터 나를 잘 따라줬던 고마운 친구다. 어느 날 이 친구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그 친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MC요!” 라고 대답했다. 처음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학창시절에 단순히 화려한 스타들의 삶을 동경해 장래희망에 연예인을 적어내고 얼마가지 않아 장래희망이 바뀌는 그런 정도의 치기어린 희망이라 생각했다.
내 추측이 빗나갔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됐다. 그 친구는 이미 수차례 오디션을 봐왔으며 행사가 있을 때는 스스로 나서 MC를 맡기도 하고, 스스로 연예계 종사자에게 직접 궁금한 것을 문의하기도 하는 등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노력은 결국 시설선생님들을 설득시켰고 그 꿈을 위해 시설을 서울로 옮겨가기 까지 했다.
서울로 가는 날 아침. 출근하니 시설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이 친구의 오디션 지원서에는 ‘왜 MC가 되기를 희망하는가?’라는 질문란에 "복지시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바꾸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 내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참 멋지고 부러운 친구 아닌가?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자꾸만 자라나던 감정이 부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건 비록 지금 꿈이 실현되진 않았지만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 친구의 모습에서 아직도 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큰 지침서가 되리란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의 생활이 항상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주로 나는 아이들의 학습을 돕는 역할을 맡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여기 아이들 역시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숙제를 내주면 안 해오기 일쑤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기 싫다고 칭얼대기도 한다. 심할 때는 1주일동안 진도가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에 점점 피로가 쌓여갈 때쯤 직무교육 소집통지를 받았다.
처음 교육을 받기 전에는 근무지보다 거리가 배로 멀어서 가기 싫었지만 2주 동안만큼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벗어나 적당히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은근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직무교육은 만만치 않았다. 생각과 달리 강의는 사회복무를 시작한 뒤 줄곧 풀리지 않고 있던 의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던지고 있었다. 사회복지는 왜 해야 하는지, 아동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하는지, 나는 교육기간 2주 내내 푹 빠져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교육전과 후의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이다.
직무교육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직무교육을 받으면서 아이들이 나에게 뭐라고 부르는지 상기했다. 바로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결코 가벼운 호칭이 아니다.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면 나는 더 큰 그러나 행복한 책임감을 느낀다. 또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에게는 행복하고 보람된 일들이 이어졌다.
평소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던 아이가 있었다. 이 친구는 오직 만화 그리기에만 빠져있었다. 그래도 시험기간에 최소한의 공부라도 하기로 하고 나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된다. 나에게도 생소한 농업관련 과목이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읽어주고 외운 것을 물어봐주는 것 밖에 없었다. 힘들고 성가신 일이었지만 그래도 함께 열심히 했다. 직무교육 전의 나였으면 이 친구와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시험공부 하라고 다그치는 것 빼고는.
시험을 치르고 귀가한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웃으며 소리쳤다.
“쌤! 쌤이랑 공부한 과목 90점 맞았어요!” 나도 활짝 웃었다.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전까지 나는 사회복지시설이 얼마나 많은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복무를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 근처 곳곳에 위치한 사회복지시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의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곁에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주말을 이용해 직무교육에서 만난 사회복무요원끼리 모여 봉사를 다니는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매사에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어렴풋하던 복지의 의미도 조금씩 조끔씩 선명해지는 것 같다.
후배 사회복무요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가 되자"
내 좌우명이다. 후배님들도 복무를 하며 겪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다보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여러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