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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박물관, 안동 권 씨와 양반 역사 개최
  • 권기상 기자
  • 등록 2016-11-07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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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명가- 광산 김 씨(光山金氏)전에 이은 두 번째

대전시립박물관이 한국의 명가전 '사시지문(四始之門), 안동 권 씨(安東權氏)와 양반의 역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015년 '한국의 명가-광산 김 씨(光山金氏)'전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의 명가전 시리즈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안동 권 씨는 우리나라 인구 중 열한 번째를 차지하는 성씨로 현재 약 70만 명에 이른다. 또한 조선시대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사족이기도 하여 현재 대전에는 탄방동(炭坊洞)과 무수동(無愁洞)에 그 집성촌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권문세족으로 조선왕조 개창 이후에도 왕성(王姓)인 전주이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며, 거의 800년 간 두 왕조에 걸쳐 명문가의 지위를 누려온 흔치 않은 성씨이기도 하다.

사시지문(四始之門)은 안동 권 씨의 네 가지 처음 된 것을 일컫는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첫 인물인 권중화(權仲和), 조선 개국 후 첫 대제학을 지낸 인물인 권근(權近), 세종대 처음으로 호당(湖堂)에 들어간 인물인 권채(權採), 그리고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 '안동 권 씨 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이다.

파트 1은 안동 권 씨의 기원과 동족 집단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시조 권행(權幸)에서 시작된 안동 권 씨는 추밀부사(樞密副使)라는 고위 관직에 오른 9대 권수평을 중심으로 비로소 동족집단의 결합이 시작됐다.

파트 2는 고려의 권문세족으로 성장한 안동 권 씨가 조선 개창 이후 사대부가로 변모하며 여전히 가문의 지위를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고려 초 지방에 머물렀던 안동 권 씨는 무인집권기에 점차 중앙으로 진출하였고,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며 최고의 가문으로 등극하였다.

파트 3은 안동 권 씨를 통해 16세기 말 17세기 초 조선 재지사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안동 권 씨는 상속받은 토지를 기반으로 경제력을 유지하였고, 집안끼리의 격을 따져 혼인을 맺어 자기 가문의 지위를 높이고 그 격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는 안동 권 씨 뿐만 아니라 당시 재지사족화 되어가는 양반들을 보여주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파트 4는 재지사족들이 향촌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넓혀가는 모습을 다룬다. 

탄옹(炭翁) 권시(權諰)를 입향조로 하는 대전의 안동 권씨는 지역 사족들의 명부인 '회덕향안(懷德鄕案)'을 만들고 대전에 도산서원(道山書院)을 건립하여 향촌 자치의 중심으로 삼았다. 재지사족들은 여러 대에 걸쳐 세거지(世居地)를 형성해 나가며 향촌 지배층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였다.

파트 5는 조선시대 양반의 개념과 그들의 형성 과정을 정리하며 신분제가 타파된 현재 사회에서는 양반의 개념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취할 것과 버릴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박물관 관계자는 "안동 권 씨의 긴 역사를 통해 조선왕조 오백년을 지배한 ‘양반’이란 무엇이며, 양반가 중에서도 ‘명가’라 일컬어지는 가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사회사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전시를 기획했다"며 "안동 권 씨는 한국의 양반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높은 반격(班格)을 지닌 명문거족으로써 ‘양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훌륭한 모범 답안을 제공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는 상대동의 대전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1월 1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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